오늘은 2009년 5월 18일 입니다. 벌써 광주 민주화 운동 29주년이 되었네요~ 저는 그당시 살지 않아서^^; 뭐라뭐라 말을 못하겟지만 민주화 운동에 동참해주신 여러분 덕에 제가 지금 있지 않나 싶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됨으로써 대통령 자리가 비워짐에 따라 정국이 상당히 불안하였습니다. 이 시기를 틈타 군부세력(전두환, 노태우등)이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순식간에 무력으로 정치권을 장악 해버렸죠. 그리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사통치 시대로 회귀 하였습니다. 민주정치가 정지되고 또다시 군사독재가 재발하자 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였으며, 국민의 저항은 전국적으로 지속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학생 연대는 서울역에 모여 민주항쟁 시위를 벌였고, 신군부는 이를 기회로 비상계엄령을 선포 하였습니다.
5.18광주 민주화 운동의 발발
전라남도 광주시에서도 역시 비상 계엄군이 각 대학을 장악하고 학생들의 등교를 저지 하였습니다. 이에 울분한 전남대학교 학생과 비상계엄군간의 충돌이 있었는데요. 계엄군에게 구타를 당하는 학생이 속출하다가, 마침내는 공수부대원이 합류하여 시위 학생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죽는 학생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학생들은 민가나 관공서로 피신하기 시작 하였고, 계엄군은 이를 감춰주던 민간인 가지 닥치는 대로 체포하고 학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이때 부녀자도 사살당하기 시작하였구요. 일부 광주 외각으로 피신 하려던 사람들을 막기 위해 모든도로를 탱크까지 동원하여 차단 시키고 체포 또는 사살당하였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피해
내 가족 친구들이 죽어나가니, 분노에 찬 시민들과 학생들은 저항이 거세졌고 도청 및 경찰서등을 점거하고 총기를 탈취하여 저항하였습니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시가전이 발발하기도 하였지만, 정규군에게 저항하기는 역부족이었죠. 시민군이 저항하자 계엄군은 무자비한 학살이 시작되었습니다. 무고한 어린학생, 부녀자, 시민까지 무차별 살상이 이어졌습니다.
광주 민중 항쟁의 종료
우선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에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광주 시내를 탈출한 일부 시민들이 알리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언론까지 이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잔혹상이 만천하에 알려 졌고 5월 27일 대규모 진압군이 투입되어 광주 도청을 탈환함으로써 수많은 시체가 쌓인 가운데 시위는 진압되었다고 합니다.
사후 처리
우선 공식적으로 밝힌 피해자 수는 사망 191명, 부상 852명 이었습니다. 그 희생은 6.25전쟁 이 후 최대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라고 하구요. 아마 이 숫자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 추정 됩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건을 공개하고, 그 후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책임자 처벌과 역사 교과서에 실릴 수 있도록 조치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광주 희생자에 대한 우리나라 시민들의 인식과, 5.18광주 민주화 운동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어 "5.18민주화 운동"으로 역사화 되었다는 점에 있는거 같습니다. 오늘은 광주 항쟁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